개인연금저축 시작 전 살필 4가지 숫자

10년 넘게 가계부를 쓰면서 자주 본 장면이 있습니다. 연말에는 세액공제가 아쉬워 연금저축에 큰돈을 넣고, 봄에는 생활비가 모자라 카드 할부를 늘리는 겁니다. 노후를 챙기려던 선택이 당장의 가계를 흔들면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개인연금저축을 시작할 때 저는 수익률보다 매달 남는 돈부터 봅니다.
1. 월 납입액은 여유자금에서 정하기
가령 한 달 실수령액이 300만 원이고 주거비·식비·교통비 등 생활비로 245만 원을 쓴다면 남는 돈은 55만 원입니다. 여기서 50만 원을 곧장 연금에 넣기는 부담스럽습니다. 병원비나 경조사가 생기는 달도 있으니까요. 비상금이 아직 부족하다면 먼저 그 통장에 돈을 모으고, 연금은 월 5만~10만 원처럼 무리 없는 금액으로 시작하는 편이 낫습니다.
제 가계부에서는 ‘지난달에 얼마가 남았나’보다 ‘최근 6개월 중 가장 빠듯했던 달에도 낼 수 있나’를 기준으로 잡습니다. 평소 30만 원이 남아도 명절이나 자동차 보험료를 낸 달에는 8만 원만 남을 수 있습니다. 그때도 부담 없는 금액이 오래 이어갈 수 있는 납입액입니다. 연말에 여유가 확인되면 추가로 넣는 방법도 있습니다.
2. 세액공제 한도와 실제 절세액 구분하기
현행 소득세법상 연금저축 납입액의 세액공제 한도는 연 600만 원입니다. 개인형 퇴직연금인 IRP 등 퇴직연금계좌까지 합치면 연 900만 원 한도를 적용합니다. 연금저축만으로 연 900만 원을 채워도 900만 원 전부가 공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로소득만 있다면 총급여 5,500만 원 이하일 때 공제율은 15%, 그보다 높으면 12%입니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흔히 16.5%, 13.2%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월 20만 원씩 1년간 240만 원을 납입하면 지방소득세 포함 계산상 각각 39만 6천 원, 31만 6,800원입니다. 다만 실제 줄어드는 세금은 납부할 세액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납입액의 일정 비율을 누구나 현금으로 돌려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제 한도를 채우려고 월 50만 원을 무리해서 자동이체할 필요는 없습니다. 월 20만 원을 안정적으로 내는 가계와 월 50만 원을 넣었다가 생활비를 빌리는 가계라면, 저는 앞쪽을 택하겠습니다. 절세액은 가계부의 보너스 칸에 적고, 납입액은 매달 나가는 돈으로 적어야 판단이 선명해집니다.
3. 계좌 안에서 무엇을 담을지 확인하기
연금저축 계좌를 열었다고 돈이 저절로 불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연금저축펀드는 선택한 펀드나 상장지수펀드의 가격에 따라 평가액이 오르내릴 수 있고, 연금저축보험은 납입 방식과 사업비, 중도 해지 시 돌려받는 금액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름에 ‘연금’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원금이나 수익률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저라면 가입 화면의 예상 수익률보다 세 가지를 먼저 적겠습니다. 매달 넣을 금액, 돈을 쓸 수 있는 시기, 비용을 뺀 뒤의 상품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10만 원씩 20년을 납입하면 원금만 2,400만 원입니다. 실제 잔액은 투자 성과와 비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숫자가 커 보이는 장기 예상표 하나보다, 손실이 난 해에도 유지할 수 있는 선택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4. 중간에 꺼낼 돈은 따로 두기
연금저축은 노후에 나누어 받을 목적으로 만든 계좌입니다. 일반적인 연금 수령에는 55세 이후 신청, 가입 후 5년 경과, 연금수령 한도 같은 요건이 붙습니다. 세액공제를 받은 돈과 운용 수익을 요건에 맞지 않게 인출하면 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공제받지 않은 납입금처럼 과세 방식이 다른 돈도 있으니, 인출 전에는 계좌의 납입·공제 내역을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이사비, 자녀 교육비, 1~2년 안에 쓸 여행비는 연금 납입액과 섞지 않습니다. 가계부에 ‘가까운 지출’ 칸을 따로 만들면 연금 통장을 급하게 열어볼 일이 줄어듭니다. 한 달 5만 원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쌓이는 돈이, 무리해서 넣었다가 다시 꺼내는 큰돈보다 제 생활에는 더 잘 맞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