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저축 월 납입액 정하는 4단계

가계부를 오래 쓰다 보니 연말에 연금저축을 급하게 채운 다음, 봄에 생활비가 모자라 고민하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세액공제 한도가 크다는 말은 반갑지만, 그 한도를 매년 채울 수 있는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연금저축은 오래 가져갈 돈으로 생각하고 월 예산에 넣을 때 마음이 훨씬 편했습니다.
1. 세액공제 한도보다 남는 돈을 먼저 본다
월급이 들어오면 주거비, 식비, 보험료, 대출 상환액처럼 빠져나갈 돈을 먼저 적습니다. 그다음 병원비나 경조사비처럼 매달 같지는 않아도 결국 쓰게 되는 돈을 따로 떼어둡니다. 가계부에서 이 두 가지를 빼고 남은 금액이 연금저축 납입액을 정할 출발점입니다.
예를 들어 월 실수령액이 320만 원인 가구가 필수 지출에 220만 원, 비정기 지출에 30만 원, 비상자금 마련에 20만 원을 배정했다면 남는 돈은 50만 원입니다. 여기서 50만 원을 전부 연금저축으로 보내면 옷이나 외식처럼 계획에 없던 지출이 생길 때 바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월 20만 원만 먼저 넣고 석 달 뒤 가계부를 다시 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월 20만 원도 1년이면 240만 원입니다.
비상자금이 거의 없다면 납입액을 더 낮춰도 괜찮습니다. 자동차 수리비 80만 원이 갑자기 필요할 때 연금저축을 깨야 한다면, 처음부터 생활비 통장에 여유를 남겨두는 편이 낫습니다. 절약을 못해서가 아니라 돈마다 쓸 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2. 돌려받는 세금은 내 세액 안에서 계산한다
국세청 안내 기준으로 연금저축의 세액공제 대상 납입액은 연 600만 원까지입니다. 개인형 퇴직연금인 IRP 등을 합치면 한도는 연 900만 원입니다. 근로소득자의 총급여가 5,500만 원 이하라면 공제율은 15%, 이를 초과하면 12%입니다. 지방소득세까지 고려해 흔히 말하는 비율은 각각 16.5%, 13.2%입니다.
월 20만 원씩 넣어 연 240만 원을 납입했다고 가정해 볼게요. 총급여 5,500만 원 이하라면 지방소득세를 포함한 세금 감소액은 최대 39만 6,000원, 그보다 높다면 최대 31만 6,800원으로 계산됩니다. 다만 이 숫자를 그대로 현금 환급액으로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공제까지 적용한 뒤 낼 세금이 충분한지, 이미 원천징수된 세금이 얼마인지에 따라 실제 환급액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연금저축을 가계부에 적을 때 ‘내년 환급 예정금’ 칸을 만들지 않습니다. 세금 혜택은 납입을 돕는 요소로 보고, 매달 빠져나가는 20만 원은 지금 쓸 수 없는 돈으로 계산합니다. 환급이 생기면 그때 비상자금이나 다음 해 납입액에 보태면 됩니다.
3. 계좌를 열기 전에 돈을 쓸 시점을 적는다
연금저축은 이름 그대로 노후에 나눠 받을 돈입니다. 일반적인 연금 수령 요건은 55세 이후에 수령을 신청하고, 가입일부터 5년이 지난 뒤 정해진 한도 안에서 인출하는 것입니다. 중간에 돈을 꺼내면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액과 운용수익에 기타소득세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납입액은 과세 방식이 다르므로, 인출이 필요할 때는 금융회사에 금액별 내역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계부에는 앞으로 3~5년 안에 쓸 목돈을 먼저 적어보면 판단이 쉬워집니다. 이사 보증금, 자녀 교육비, 대출 상환처럼 사용 시점이 비교적 분명한 돈은 별도로 마련합니다. 연금저축에는 그 계획을 빼고도 오래 두어도 되는 금액을 넣습니다. 세액공제 한도를 채우려고 가까운 미래의 목돈까지 옮기면 가계 현금 흐름이 답답해집니다.
4. 월 자동이체로 시작하고 분기마다 조정한다
처음부터 월 50만 원을 목표로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월 10만 원으로 시작해 석 달 동안 생활비 통장 잔액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잔액이 안정적이면 5만 원씩 올리고, 비정기 지출이 많았던 분기에는 그대로 유지합니다. 반대로 카드값을 메우려고 적금을 반복해서 깨고 있다면 납입액을 낮출 신호입니다.
계좌 안에서 무엇을 운용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연금저축이라고 해서 수익률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금성 상품인지, 펀드처럼 가격이 오르내리는 상품인지에 따라 위험과 비용이 다릅니다. 자동이체만 설정해 두고 운용 내역을 보지 않으면 돈을 모으는 방식이 내 생각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분기마다 한 번씩 납입액과 잔액, 수수료를 함께 확인하면 충분합니다.
제 가계부에서 오래 살아남은 항목은 큰 금액을 한 번에 넣은 항목이 아니라, 부담 없는 금액으로 꾸준히 이어간 항목이었습니다. 연금저축도 한도를 얼마나 빨리 채우느냐보다 다음 달 생활비를 지키면서 계속 넣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