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보험 가입 전 가계부에서 먼저 확인할 5가지 숫자

1. 정기보험은 ‘언젠가’보다 ‘지금 비는 돈’으로 봐야 한다
얼마 전 가계부 모임에서 30대 부부 한 분이 보험료만 월 68만 원이라고 하더군요. 수입은 세후 430만 원 정도였고, 아이는 한 명이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아주 이상한 금액은 아닌데, 막상 가계부를 펼쳐 보니 매달 카드값을 막느라 비상금이 거의 쌓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정기보험은 일정 기간 동안 사망 보장을 크게 가져가는 보험입니다. 평생 보장되는 종신보험과 다르게 20년, 30년처럼 기간을 정합니다. 그래서 같은 보장금액이라면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싸다’가 아닙니다. 우리 집에 그 보장이 필요한 기간이 언제까지인지가 먼저입니다.
예를 들어 외벌이 가정이고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면, 적어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소득 공백을 막는 장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부가 맞벌이고 대출이 거의 없고 비상금도 1년 치 생활비 가까이 있다면, 큰 보장보다 보험료를 줄이는 선택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2. 보장금액은 감정이 아니라 생활비로 계산한다
정기보험 상담을 받다 보면 1억, 2억, 3억 같은 숫자가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가계부를 오래 쓰다 보면 이 숫자는 느낌으로 정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남겨진 가족이 실제로 몇 년을 버텨야 하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제가 보통 먼저 적어보는 숫자는 세 가지입니다. 월 필수 생활비, 남은 대출, 아이 교육비입니다. 예를 들어 월 필수 생활비가 280만 원이고, 배우자가 당장 벌 수 있는 소득이 월 150만 원이라면 매달 부족분은 130만 원입니다. 이 부족분을 10년으로 잡으면 1억 5,600만 원입니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 잔액 8,000만 원이 있다면 필요한 보장 규모는 2억 원을 훌쩍 넘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국민연금 유족연금, 퇴직금, 회사 단체보험, 기존 보험금도 같이 봐야 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크게 드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이미 회사에서 사망 보장이 5,000만 원 있고, 배우자 소득이 안정적이라면 개인 정기보험은 부족분만 메우는 방식이 더 가볍습니다.
3. 월 보험료는 소득의 몇 퍼센트인지가 더 중요하다
가계부에서 보험료를 볼 때 저는 금액보다 비율을 먼저 봅니다. 월 10만 원도 어떤 집에는 부담이고, 어떤 집에는 가벼운 비용입니다. 세후 소득 300만 원인 집의 10만 원은 3.3%이고, 세후 소득 700만 원인 집의 10만 원은 1.4%입니다. 같은 보험료라도 체감이 다릅니다.
생활비가 빠듯한 집이라면 보장성 보험 전체를 세후 소득의 5~8% 안에서 먼저 맞춰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이미 실손, 운전자, 어린이보험, 암보험까지 합쳐 월 40만 원을 내고 있다면 정기보험을 추가하기 전에 기존 보험을 먼저 펼쳐야 합니다. 중복 보장이나 목적이 애매한 특약이 있는지 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보험은 해지하면 손해가 날 수 있어서 처음부터 오래 낼 수 있는 금액으로 잡는 게 중요합니다. 월 7만 원은 괜찮아 보여도 20년이면 1,680만 원입니다. 월 12만 원이면 2,880만 원입니다. 보험료는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라서, 작은 차이가 10년 뒤 현금흐름을 꽤 크게 바꿉니다.
4. 정기보험이 특히 필요한 집은 따로 있다
모든 가정에 정기보험이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이 겹치면 우선순위가 올라갑니다. 특히 소득을 벌어오는 사람이 한 명인데 부양가족이 있거나, 대출이 크거나, 아이가 아직 어릴 때 그렇습니다.
- 외벌이이고 배우자나 자녀가 소득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
-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등 큰 부채가 남아 있는 경우
-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와 교육비 기간이 많이 남은 경우
- 자영업자라 회사 단체보험이나 퇴직 안전망이 약한 경우
- 종신보험 보험료가 부담돼 보장은 필요하지만 비용을 낮추고 싶은 경우
반대로 자녀가 독립했고 대출이 거의 없으며 배우자도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다면 정기보험의 필요성은 낮아질 수 있습니다. 이때는 새로 가입하는 것보다 의료비, 간병비, 노후 현금흐름을 점검하는 쪽이 더 현실적일 때가 많습니다.
5. 가입 전에는 3개 표만 만들어도 실수가 줄어든다
정기보험을 보기 전에 엑셀이나 가계부 앱에 간단히 세 칸만 만들어도 판단이 쉬워집니다. 첫째, 지금 우리 집 월 필수 생활비입니다. 식비, 주거비, 통신비, 교육비, 보험료, 대출상환액처럼 끊기 어려운 돈만 적습니다. 둘째, 소득이 끊겼을 때 들어올 돈입니다. 배우자 소득, 비상금, 퇴직금 예상액, 기존 보험금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셋째, 부족한 기간입니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인지, 대출이 끝날 때까지인지 정합니다.
예를 들어 필수 생활비가 월 320만 원이고 배우자가 벌 수 있는 돈이 월 180만 원이면 부족분은 월 140만 원입니다. 이걸 15년으로 보면 2억 5,200만 원입니다. 기존 사망보험금이 7,000만 원 있다면 추가로 필요한 보장은 약 1억 8,000만 원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상담 자리에서 5억 보장을 권유받아도 우리 집 숫자로 다시 말할 수 있습니다.
보험기간도 같은 방식입니다. 아이가 현재 6세라면 20년 만기만으로도 대학교 시기까지 어느 정도 커버됩니다. 대출 만기가 28년 남았다면 30년 만기를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60세 이후까지 큰 사망보장이 꼭 필요한지 묻는 순간, 보험료를 줄일 여지가 생깁니다.
보험은 불안을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을 사는 비용이다
정기보험은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안전장치이고, 누군가에게는 이미 충분한 보장 위에 얹는 추가 고정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얼마 들었는지보다 우리 집 가계부가 먼저입니다. 월 생활비가 얼마인지, 대출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이가 몇 년 더 보호를 필요로 하는지, 이 숫자들이 보험료보다 앞에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보험 상담을 받을 때 불안한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그런데 10년 넘게 가계부를 쓰며 느낀 건, 불안을 없애려고 모든 보장을 다 사면 매달 현금이 말라간다는 겁니다. 필요한 기간에 필요한 크기만큼만 준비하고, 남는 돈은 비상금과 저축으로 남겨두는 균형이 오래 갑니다. 정기보험은 우리 집의 가장 약한 시기를 지나가게 해주는 장치일 때 가장 쓸모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