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 카드뉴스로 새는 돈 찾는 5단계

얼마 전 한 달 가계부를 펼쳐 놓고도 어디서 돈이 샜는지 바로 말하지 못했다. 지출 항목은 빼곡했는데, 숫자가 너무 많으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 소비를 카드뉴스 다섯 장으로 줄여 봤다. 첫 장에는 수입과 지출, 다음 장에는 가장 많이 쓴 항목을 적는 식이었다. 막연히 ‘이번 달도 많이 썼네’ 싶던 마음이 ‘배달비가 지난달보다 6만 원 늘었구나’라는 관찰로 바뀌었다.
여기서 카드뉴스는 남에게 보여줄 멋진 디자인이 아니다. 내 가계부에서 중요한 숫자만 한 장씩 꺼내 보는 방식이다. 종이 다섯 장에 적어도 되고, 휴대전화 메모에 장별로 나눠 써도 충분하다. 숫자는 이해하기 쉬워야 다음 달 생활에 쓸 수 있다.
1장에는 이번 달 돈의 흐름을 적는다
첫 장에는 세 숫자만 놓는다. 들어온 돈, 나간 돈, 남은 돈이다. 예를 들어 세후 수입이 320만 원이고 지출이 294만 원이라면 남은 돈은 26만 원이다. 월급날 50만 원을 저축해 두고 나머지 계좌에서 24만 원을 다시 꺼내 썼다면, 저축액만 보고 ‘50만 원을 모았다’고 적으면 실제 흐름을 놓친다. 계좌 사이를 옮긴 돈과 생활비로 쓴 돈을 구분해야 한다.
저는 이 장에 지난달 숫자도 작게 붙인다. 지난달 지출이 278만 원이었다면 이번 달은 16만 원 늘었다. 이 차이가 곧 낭비라는 뜻은 아니다. 병원비나 경조사비처럼 필요한 지출이 있었을 수 있다. 첫 장은 잘잘못을 판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뒤에서 확인할 차이를 찾는 자리다.
2장에는 고정비를 먼저 올린다
월세, 관리비, 통신비, 보험료, 정기 구독료는 결제할 때마다 고민하지 않아도 빠져나간다. 그래서 작은 금액도 오래 이어지기 쉽다. 월 9,900원짜리 구독 두 개를 거의 쓰지 않는다면 한 달에 1만 9,800원, 1년에는 23만 7,600원이다. 하루 커피 한 잔을 참는 것보다 안 쓰는 구독 하나를 끊는 편이 생활의 불편이 적을 수도 있다.
고정비 장에는 금액 옆에 ‘실제로 썼는지’를 함께 적는다. 보험은 이번 달에 혜택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보장 내용과 가족 상황을 따져야 한다. 반면 구독 서비스는 최근 한 달 이용 기록만 봐도 판단하기 쉬운 경우가 많다. 줄일 항목을 찾을 때는 큰 금액보다 손대기 쉬운 항목부터 보는 게 부담이 덜하다.
3장에는 자주 반복된 소비를 적는다
한 번에 큰돈을 쓰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4,500원, 7,000원씩 반복된 지출은 가계부에 모아 보기 전까지 잘 보이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주 3회 6,000원씩 썼다면 한 달을 4주로 잡아 약 7만 2,000원이다. 이 돈을 모두 아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퇴근길 허기를 달래는 지출이었다면 집에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는 쪽이 더 편할 수도 있다.
이 장에는 횟수와 합계 금액을 같이 쓴다. ‘간식 12회, 7만 2,000원’처럼 적으면 한 번의 가격과 한 달의 크기를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소비가 일어난 상황을 한 줄 덧붙인다. 야근한 날인지, 장을 보지 못한 날인지 알면 지출을 무작정 참는 대신 생활의 빈틈을 메울 방법이 보인다.
4장에는 후회 없는 지출도 남긴다
가계부를 오래 쓰면서 느낀 건, 모든 지출을 줄이는 방식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친구와 먹은 저녁 4만 원이 반가운 만남이었다면 그 돈은 내 생활에서 제 역할을 했다. 반대로 별생각 없이 결제한 물건이 서랍에 그대로 있다면 금액이 작아도 다음에는 한 번 멈출 이유가 된다.
그래서 네 번째 장은 ‘계속 쓰고 싶은 돈’과 ‘다음에는 바꾸고 싶은 돈’으로 나눈다. 예를 들어 운동 수업 8만 원은 꾸준히 다녔다면 유지하고, 거의 보지 않은 영상 구독 1만 5,000원은 중단 후보로 적는다. 같은 1만 원이라도 만족도는 다르다. 이 장이 있어야 카드뉴스가 절약 점수표가 되지 않고, 내 생활에 맞는 예산표가 된다.
5장에는 다음 달 바꿀 행동 하나를 쓴다
마지막 장에 ‘식비 줄이기’라고 쓰면 다음 달에 무엇을 할지 알기 어렵다. ‘일요일 저녁에 냉장고를 보고 평일 두 끼 재료를 산다’처럼 행동을 적는 편이 낫다. 배달 주문이 월 8회, 16만 원이었다면 다음 달 목표를 6회로 잡아 볼 수 있다. 주문 한 번에 평균 2만 원이라면 예상 차이는 4만 원이다. 그 4만 원 때문에 지나치게 피곤한 날까지 요리할 필요는 없다.
목표는 한 번에 하나면 충분하다. 한 달 뒤에는 주문 횟수와 실제로 남은 돈을 다시 본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면 의지가 약해서라고 몰아붙이기보다, 어느 날에 주문이 늘었는지 확인한다. 야근이 반복됐다면 식비 목표보다 바쁜 날 먹을 음식을 미리 마련하는 일이 먼저일 수 있다.
다섯 장을 만드는 데 화려한 사진은 필요 없다. 가계부 숫자 몇 개와 그 돈을 쓴 이유 한 줄이면 된다. 저는 그렇게 만든 카드뉴스를 다음 달 가계부 첫머리에 붙여 둔다. 지난달의 나를 평가하려는 기록보다, 다음 달의 나를 조금 편하게 해 줄 기록이 오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