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받기 전 가계부에서 먼저 확인할 5가지 숫자

1. 대출 가능액보다 월 현금흐름을 먼저 본다
얼마 전 지인이 전세대출 상담을 받고 와서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가계부를 같이 보면서 제일 먼저 본 건 한도도, 금리도 아니었습니다. 매달 통장에서 실제로 남는 돈이 얼마인지였습니다.
예를 들어 월 소득이 420만 원이고 고정지출이 250만 원, 변동지출이 평균 95만 원이면 남는 돈은 75만 원입니다. 여기서 전세대출 이자가 월 45만 원으로 들어오면 남는 돈은 30만 원입니다. 숫자만 보면 버틸 수 있어 보이지만, 병원비 18만 원이나 경조사비 20만 원 한 번이면 바로 적자가 납니다.
전세대출은 집을 구할 때는 ‘큰돈을 빌리는 일’처럼 보이지만, 살기 시작하면 매달 빠지는 고정비가 됩니다. 그래서 대출 가능액보다 중요한 건 내 생활비 구조가 이자를 품을 수 있는지입니다. 저는 가계부에서 최근 6개월 평균을 봅니다. 한 달만 보면 착시가 생기거든요.
2. 전세대출 이자는 생활비가 아니라 고정비다
많은 분들이 전세대출 이자를 카드값이나 식비처럼 그달그달 조절 가능한 돈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이자는 줄이기 어렵습니다. 외식비는 40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줄일 수 있지만, 이자는 계약과 금리에 묶여 있습니다.
가계부에서는 전세대출 이자를 ‘주거 고정비’로 따로 분류하는 게 좋습니다. 월세, 관리비, 공과금, 인터넷비와 같은 칸에 넣어야 실제 부담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월 이자 38만 원, 관리비 18만 원, 전기·가스·수도 12만 원이면 주거 관련 비용만 68만 원입니다. 여기에 교통비까지 붙으면 집 위치 선택이 생활비 전체를 흔듭니다.
- 월 이자: 38만 원
- 관리비: 18만 원
- 공과금 평균: 12만 원
- 주거 관련 고정비 합계: 68만 원
이 숫자가 월 소득의 25%를 넘으면 저는 조금 보수적으로 봅니다. 무조건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다른 고정비, 특히 보험료·구독료·차량 유지비가 이미 높은 집이라면 숨 쉴 공간이 줄어듭니다.
3. 보증금 차이 5천만 원이 매달 얼마로 바뀌는지 계산한다
집을 볼 때 2억 5천만 원 전세와 3억 원 전세는 체감상 “조금 더 좋은 집”의 차이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전세대출을 끼면 그 5천만 원은 매달 이자로 바뀝니다. 연 4%로 단순 계산하면 5천만 원의 1년 이자는 200만 원, 월로 나누면 약 16만 7천 원입니다.
16만 7천 원은 작은 돈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계부에서는 꽤 큽니다. 평일 점심값을 월 20번 기준으로 하루 8천 원 줄여야 비슷한 금액이 나옵니다. 또는 OTT, 커피, 택시비를 다 합쳐야 겨우 맞춰지는 돈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집을 볼 때 마음에 드는 정도를 숫자로 바꿔 봅니다. “이 집에 매달 17만 원을 더 낼 만큼 만족도가 있나?” 이렇게 물으면 선택이 조금 선명해집니다. 넓은 거실, 역과의 거리, 채광, 층간소음 가능성까지 다 포함해서요. 좋은 집을 고르는 일과 생활을 지키는 일은 같이 가야 합니다.
4. 비상금은 보증금이 아니라 통장 잔액으로 남겨둔다
전세를 구할 때 가장 흔한 실수가 가진 돈을 거의 다 보증금에 넣는 겁니다. “어차피 내 돈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보증금은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냉장고가 고장 나거나 이직 공백이 생겼을 때 보증금 일부를 빼서 쓰기 어렵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최소 3개월치 생활비는 따로 남기는 편이 좋습니다. 월 생활비가 280만 원인 집이라면 840만 원입니다. 조금 더 안정적으로 보려면 6개월치, 즉 1,680만 원까지 봅니다. 이 돈이 있으면 전세대출 이자가 조금 부담스러운 달에도 카드 할부로 버티는 상황을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이사 직후에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갑니다. 중개보수, 이사비, 청소비, 커튼, 조명, 자잘한 수리비가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제 가계부에서도 이사한 달은 평소보다 1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더 쓴 기록이 많았습니다. 이 돈을 예상하지 않으면 새집 첫 달부터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5. 갱신 시점과 금리 변동을 가계부 달력에 적어둔다
전세대출은 계약하는 날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만기, 갱신, 금리 변동 시점이 생활비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저는 가계부 달력에 대출 만기 6개월 전, 3개월 전, 1개월 전을 표시해 둡니다. 막판에 움직이면 선택지가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현재 월 이자가 42만 원인데 금리나 대출 조건이 바뀌어 55만 원이 될 수 있다면, 그 차이는 월 13만 원입니다. 1년이면 156만 원입니다. 이 정도면 휴가비나 명절비 예산 하나가 사라지는 수준입니다. 미리 알면 식비를 갑자기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몇 달에 걸쳐 소비 구조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전세대출 전 가계부에서 체크할 숫자
- 최근 6개월 평균 월 소득
- 최근 6개월 평균 고정지출
- 전세대출 이자 포함 후 남는 돈
- 이사 직후 예상 추가비용
- 현금으로 남길 비상금
전세대출을 무조건 작게 받는 게 답은 아닙니다. 너무 불편한 집을 고르면 교통비, 외식비, 스트레스 소비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빌릴 수 있는 금액과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은 다릅니다. 저는 그 차이를 가계부가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다고 봅니다.
집은 숫자만으로 고를 수 없지만, 숫자를 빼고 고르면 생활이 흔들릴 때가 많았습니다. 내 월급 안에서 이자와 생활비와 저축이 같이 돌아가는지, 그 흐름을 한 번만 제대로 보면 전세대출이 덜 막연해집니다.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집에서 매달 불안하지 않게 사는 게 더 오래 남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