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 받기 전 가계부로 확인할 5가지 숫자

얼마 전 지인이 주택담보대출 상담을 받고 와서 제게 가계부를 보여줬습니다. 은행에서는 대출 가능 금액이 생각보다 크게 나왔다고 했는데, 막상 한 달 생활비를 넣어보니 표정이 바로 달라지더군요. 집값만 보면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매달 빠져나가는 돈까지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저도 10년 넘게 가계부를 쓰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대출은 큰 숫자로 결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 버티는 힘은 아주 작은 반복 지출에서 나옵니다. 월 3만 원짜리 구독, 주 2회 배달, 자동차 유지비 같은 것들이 주택담보대출 상환액과 만나면 갑자기 무거워집니다.
1. 대출 가능 금액보다 월 상환액을 먼저 본다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볼 때 가장 먼저 듣는 말이 “얼마까지 가능하다”입니다. 그런데 가계 입장에서는 가능 금액보다 중요한 숫자가 월 상환액입니다. 예를 들어 3억 원을 연 4.5%, 30년 원리금균등으로 빌리면 월 상환액은 대략 152만 원대입니다. 2억 5천만 원이면 약 126만 원대, 2억 원이면 약 101만 원대입니다.
이 차이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매달 25만 원은 1년이면 300만 원입니다. 가전 교체, 자동차 보험, 명절 비용 같은 비정기 지출을 생각하면 꽤 큰 돈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출 상담 전에 가계부에 가짜 항목을 하나 넣어봅니다. 이름은 ‘주담대 예상 상환액’으로 하고, 3개월 정도 그 돈이 없는 셈 치고 살아보는 방식입니다.
2. 생활비는 평균이 아니라 나쁜 달 기준으로 본다
많은 분들이 한 달 생활비를 말할 때 보통 달을 기준으로 잡습니다. 식비 80만 원, 교통비 20만 원, 관리비 25만 원처럼요. 그런데 주택담보대출은 좋은 달만 골라서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아이 학원비가 늘어난 달, 부모님 생신이 있는 달, 자동차 정비가 겹친 달에도 똑같이 빠져나갑니다.
제 가계부에서는 최근 12개월 중 지출이 가장 컸던 3개월을 따로 표시합니다. 그리고 그 3개월 평균을 기준으로 대출 상환 여력을 봅니다. 평소 지출이 350만 원인데 나쁜 달 평균이 430만 원이라면, 상환 가능액은 350만 원 기준으로 잡으면 안 됩니다. 실제로 흔들리는 지점은 430만 원짜리 달에서 생기니까요.
가계부에서 따로 체크할 항목
- 연 1회 또는 반기별로 나가는 보험료
- 자동차세, 자동차보험, 정비비
- 명절, 생일, 경조사비
- 여름과 겨울의 냉난방비 차이
- 아이 교육비나 돌봄비의 증가 가능성
3. 소득의 30% 규칙은 출발점일 뿐이다
보통 주택 관련 비용은 소득의 30% 안팎으로 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월 실수령 500만 원 가구라면 주택담보대출 상환액과 관리비, 재산세 등을 합쳐 150만 원 안쪽이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가구마다 다르게 봐야 합니다.
맞벌이지만 한 명의 소득이 육아나 이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면 30%도 빡빡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차가 없고, 부모님 지원 부담이 적고, 소비 패턴이 단순한 가구라면 조금 더 버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남들이 말하는 적정 비율이 아니라 우리 집의 고정비 구조입니다.
저는 고정비를 먼저 적습니다. 대출 상환액, 관리비, 통신비, 보험료, 교통비, 교육비처럼 줄이기 어려운 돈입니다. 실수령 500만 원 중 고정비가 이미 280만 원이라면 식비와 생활비를 아무리 아껴도 여유가 크지 않습니다. 반대로 고정비가 180만 원이면 같은 소득이라도 선택지가 넓어집니다.
4. 금리 1%p 상승을 가계부에 넣어본다
주택담보대출은 금리가 무섭습니다. 대출 원금이 크기 때문에 1%p 차이도 체감이 큽니다. 3억 원을 빌렸을 때 금리가 4%대에서 5%대로 올라가면 월 부담이 수십만 원 늘어날 수 있습니다. 변동금리를 선택했거나, 고정 기간이 끝난 뒤 갈아타야 하는 구조라면 더 신중해야 합니다.
가계부에서는 현재 예상 상환액만 넣지 말고, 금리가 오른 경우의 상환액도 따로 넣어보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상환액이 150만 원이라면 스트레스 테스트용으로 170만 원, 180만 원도 넣어봅니다. 그 상태에서도 적금이 유지되는지, 비상금이 줄지 않는지 보는 겁니다.
솔직히 이 과정은 기분 좋은 계산은 아닙니다. 집을 사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숫자가 방해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근데 가계부의 역할이 바로 그겁니다. 기분이 아니라 잔고로 말해주는 것. 그래서 불편하지만 꽤 쓸모 있습니다.
5. 대출 후에도 남겨야 할 돈을 먼저 정한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한동안 “집 샀으니까 조금만 참자”라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물론 어느 정도 조정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여유를 없애고 대출만 갚는 구조는 오래 가기 어렵습니다. 갑작스러운 병원비, 이직 공백, 가전 고장 같은 일이 생기면 바로 카드값으로 밀릴 수 있습니다.
저는 대출을 계산할 때 최소 세 가지 돈은 남겨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 월 소득의 10% 이상 비상금 적립. 둘째, 연간 비정기 지출을 위한 별도 통장. 셋째, 작은 즐거움 비용입니다. 여기서 작은 즐거움 비용은 낭비가 아닙니다. 한 달에 10만 원이라도 숨통이 있어야 절약이 계속됩니다.
대출 전 적어볼 질문
- 대출 상환 후에도 매달 비상금이 쌓이는가
- 금리가 올라도 생활비를 카드로 메우지 않을 수 있는가
- 나쁜 달 기준으로도 적자가 나지 않는가
- 1년 안에 큰 지출이 예정되어 있지는 않은가
- 집 때문에 가족의 기본 생활 리듬이 무너지지는 않는가
주택담보대출은 무조건 피해야 할 돈도 아니고, 무조건 많이 받아야 이기는 게임도 아닙니다. 내 집이 주는 안정감은 분명히 큽니다. 다만 그 안정감이 매달 불안으로 바뀌지 않으려면, 계약서보다 먼저 우리 집 가계부를 봐야 합니다. 은행은 빌릴 수 있는 금액을 말해주지만, 오래 버틸 수 있는 금액은 결국 우리 집 숫자가 알려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