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 받기 전 가계부에서 먼저 봐야 할 5가지 숫자

얼마 전 가계부를 넘겨 보다가 예전에 제가 신용대출을 고민하던 달의 기록을 다시 봤습니다. 그때 월급은 310만 원이었고, 카드값은 128만 원, 고정비는 96만 원, 적금은 40만 원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적금도 하고 있으니 괜찮아 보였는데, 실제로 남는 돈은 20만 원 안팎이었어요. 그래서 신용대출 한도보다 먼저 봐야 하는 건 내 생활비의 숨은 구조라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신용대출은 담보 없이 신용으로 빌리는 돈이라 빠르고 편합니다. 그런데 빠르다는 장점 때문에 생활비 구멍을 덮는 용도로 쓰기 쉽습니다. 한 번은 편하지만, 매달 이자가 붙기 시작하면 가계부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1. 한도보다 월 상환액을 먼저 계산하기
대출 앱을 열면 보통 한도와 금리가 먼저 보입니다. 2천만 원 가능, 3천만 원 가능 같은 숫자가 눈에 들어오죠. 그런데 가계부를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도보다 월 상환액이 먼저입니다.
예를 들어 2천만 원을 빌리고 매달 45만 원을 갚아야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월급이 300만 원이라면 45만 원은 15%입니다. 숫자로 보면 그럭저럭 가능해 보이지만, 이미 월세 60만 원, 보험 18만 원, 통신비 9만 원, 교통비 12만 원, 식비 55만 원이 나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여기에 카드 할부까지 있으면 대출 상환액은 남는 돈에서 빠지는 게 아니라 생활비 한가운데 들어옵니다.
저는 대출을 검토할 때 월 상환액이 월 실수령액의 10%를 넘으면 꽤 부담스럽게 봅니다. 300만 원을 받는다면 30만 원 선입니다. 15%를 넘는 순간부터는 식비, 외식비, 경조사비 중 하나가 자주 밀립니다. 이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빡빡해서 그렇습니다.
2. 신용대출이 필요한 이유를 세 칸으로 나누기
신용대출을 생각할 때 저는 이유를 세 칸으로 나눕니다. 급한 생활비, 기존 빚 이동, 소득을 만들기 위한 지출입니다. 같은 500만 원이라도 이유에 따라 위험도가 다릅니다.
- 급한 생활비: 병원비, 이사비, 갑작스러운 가족 지출처럼 피하기 어려운 돈
- 기존 빚 이동: 카드론, 현금서비스, 고금리 대출을 낮은 금리로 바꾸는 돈
- 소득 관련 지출: 자격증, 장비, 출퇴근 차량 수리처럼 향후 수입과 연결되는 돈
가장 조심할 건 생활비 부족을 반복해서 메우는 신용대출입니다. 이번 달 카드값 180만 원이 부담돼서 300만 원을 빌렸는데, 다음 달 소비 패턴이 그대로면 빌린 돈은 금방 사라집니다. 그러면 남는 건 원금과 이자뿐입니다.
반대로 고금리 카드론을 낮은 금리 신용대출로 갈아타는 경우라면 계산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때도 기존 카드론을 갚은 뒤 카드를 다시 쓰면 빚이 두 줄이 됩니다. 대출 이동은 금리만 바꾸는 일이 아니라 소비 습관까지 같이 바꾸는 일입니다.
3. 대출 전 3개월 가계부에서 확인할 것
신용대출을 받기 전에는 최소 3개월 가계부를 봐야 합니다. 1개월만 보면 명절, 휴가, 병원비 같은 변수가 너무 큽니다. 3개월 평균을 내면 내 생활의 기본 체력이 보입니다.
남는 돈 평균
월급에서 모든 지출을 빼고 실제로 남은 돈을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계획상 남는 돈이 아니라 통장에 진짜 남은 돈입니다. 예산표에는 50만 원이 남아야 하는데 실제 잔고가 8만 원이라면 상환 여력은 8만 원에 가깝습니다.
변동비 중 줄일 수 있는 금액
외식, 배달, 쇼핑, 카페, 구독료를 따로 묶어 봅니다. 예를 들어 3개월 평균 배달비가 24만 원, 카페가 11만 원, 온라인 쇼핑이 32만 원이라면 줄일 수 있는 후보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부 끊겠다고 잡으면 오래 못 갑니다. 저는 보통 20~30%만 줄이는 계산을 합니다. 67만 원의 25%면 약 17만 원입니다. 이 정도가 현실적인 상환 여력에 가까웠습니다.
비정기 지출
자동차 보험, 명절, 부모님 생신, 재산세, 휴가비처럼 매달 나오지 않는 돈도 빠뜨리면 안 됩니다. 1년에 240만 원이 비정기 지출이라면 월 20만 원짜리 고정비로 봐야 합니다. 이 돈을 계산하지 않고 대출 상환액을 잡으면 꼭 몇 달 뒤 카드값으로 되돌아옵니다.
4. 신용대출 후 가계부가 무너지지 않는 기준
제가 실제로 써보고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기준은 대출금을 생활비 통장에 오래 두지 않는 겁니다. 통장에 500만 원이 들어오면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원래 없던 돈인데도 잔고가 넉넉해 보이니까 카드 결제일 전까지 착각이 생깁니다.
목적이 정해진 돈이라면 들어온 날 바로 해당 지출로 보내는 게 낫습니다. 기존 대출 상환용이면 바로 갚고, 병원비라면 병원비로, 이사비라면 이사비로 분리합니다. 남은 돈이 있다면 비상금이라고 부르기 전에 원금 일부 상환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또 하나는 상환일을 월급일 직후로 두는 방식입니다. 월급이 들어오고 2~3일 안에 대출 상환이 빠져나가면 남은 돈으로 한 달을 설계하게 됩니다. 반대로 월말에 빠져나가면 그 돈을 남겨둬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특히 식비와 경조사비는 늘 예상보다 조금 더 씁니다.
5. 빌리기 전 적어볼 문장
저는 큰돈을 움직이기 전 가계부 맨 아래에 한 문장을 씁니다. 이 돈을 빌려서 해결되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다음 달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입니다.
예를 들어 “이사 보증금 부족분 700만 원을 메우기 위한 대출이고, 이사 후 월세가 15만 원 줄어든다”라면 방향이 비교적 분명합니다. 하지만 “카드값이 부족해서 500만 원을 빌린다. 다음 달 카드 사용 계획은 아직 없다”라면 위험 신호입니다. 이 경우에는 대출 실행보다 카드 한도 조정, 자동결제 점검, 구독 해지, 할부 중단을 먼저 만지는 게 순서에 맞습니다.
신용대출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급할 때 시간을 벌어주고, 비싼 이자를 낮추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가계부 없이 빌리면 내 월급의 일부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모른 채 상환만 시작하게 됩니다. 저는 대출을 고민하는 날일수록 더 차분하게 숫자를 적는 편입니다. 돈을 빌리는 결정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달의 나를 얼마나 덜 몰아붙일지 정하는 일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