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받기 전 가계부에서 꼭 확인할 5가지 숫자

얼마 전 예전 가계부를 넘겨보다가 전세로 이사하던 해의 지출표를 다시 봤습니다. 그때는 대출 한도만 보고 마음이 놓였는데, 실제로 잔고를 흔든 건 이자보다 관리비, 이사비, 중개보수, 가전 교체비 같은 작은 줄들이었습니다. 전세대출은 금액이 커서 어렵게 느껴지지만, 가계부 관점에서는 결국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 하나가 더 생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세대출을 볼 때 “얼마까지 빌릴 수 있나”보다 “빌린 뒤에도 생활이 무너지지 않나”를 먼저 봅니다. 대출 가능 금액과 감당 가능 금액은 꽤 다릅니다. 은행은 소득과 신용을 보고 한도를 계산하지만, 내 집 살림은 식비, 교통비, 부모님 용돈, 병원비, 아이 학원비까지 같이 움직이니까요.
1. 월 이자보다 월 고정비 전체를 먼저 본다
전세대출을 계산할 때 가장 많이 보는 숫자는 월 이자입니다. 예를 들어 1억 원을 빌리고 연 4% 금리라면 단순 계산으로 1년에 이자 400만 원, 한 달 약 33만 원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생각보다 괜찮네”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가계부에는 이자만 들어오지 않습니다. 새집 관리비가 기존보다 8만 원 오르고, 출퇴근 교통비가 5만 원 늘고, 인터넷 이전과 생활용품 구입으로 초반 2~3개월 지출이 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월 부담은 33만 원이 아니라 46만 원, 초반에는 70만 원 이상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전세대출 이자: 월 33만 원
- 관리비 증가분: 월 8만 원
- 교통비 증가분: 월 5만 원
- 이사 후 생활비 증가 예상: 월 10만 원
이렇게 합치면 매달 추가 부담은 약 56만 원입니다. 전세대출을 볼 때는 이 숫자가 진짜 생활 숫자에 가깝습니다.
2. 보증금 욕심은 비상금과 같이 계산한다
전세집을 구하다 보면 2천만 원만 더 보태면 집 컨디션이 확 좋아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채광이 좋아지고, 역과 가까워지고, 곰팡이 걱정도 덜해 보입니다. 사실 저도 이 유혹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문제는 그 2천만 원을 대출로만 해결하면 매달 이자가 늘고, 현금을 털어서 해결하면 비상금이 얇아진다는 점입니다.
가계부를 오래 쓰다 보니 비상금이 적을 때 사람의 소비 습관이 더 흔들렸습니다. 예상치 못한 병원비 30만 원, 차량 수리비 50만 원, 경조사비 20만 원이 생기면 카드 할부로 넘기게 됩니다. 그러면 전세대출 이자와 카드값이 같이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저는 전세보증금을 맞출 때 최소 3개월치 필수생활비는 남겨두는 쪽을 권합니다. 월 필수생활비가 250만 원이라면 750만 원 정도는 손대지 않는 돈으로 남기는 식입니다. 아주 공격적으로 잡아도 2개월치, 즉 500만 원은 남아 있어야 마음이 덜 급해집니다.
3. 대출 한도보다 상환 이후 생활비를 적어본다
은행에서 가능한 한도를 들으면 마음이 커집니다. “이 정도까지 된대”라는 말은 집을 고를 때 선택지를 넓혀주지만, 동시에 기준을 흐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출 상담 전에 먼저 종이에 월 예산을 적어봅니다.
간단한 월 예산 예시
- 월 실수령액: 380만 원
- 기존 고정비: 120만 원
- 식비와 생활비: 110만 원
- 보험, 통신, 교통: 55만 원
- 저축 최소 목표: 50만 원
- 남는 금액: 45만 원
이 집에서 전세대출 이자가 월 40만 원이라면 숫자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런데 남는 금액 45만 원 중 40만 원이 사라지면 실제 여유는 5만 원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친구 결혼식 하나, 감기 한 번, 명절 선물비 한 번에도 카드값이 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당 가능한 월 이자는 “남는 돈” 전체가 아니라 남는 돈의 60~70% 안쪽으로 잡는 편이 낫습니다. 위 예시라면 월 27만~31만 원 정도가 생활을 덜 흔드는 구간입니다. 물론 가구마다 다르지만, 이 정도 완충이 있어야 예산이 숨을 쉽니다.
4. 금리 변동 가능성을 생활비로 번역한다
전세대출을 받을 때 고정금리인지 변동금리인지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금융 용어로만 보면 감이 잘 안 옵니다. 저는 금리 1%포인트 차이를 월 생활비로 바꿔서 봅니다.
예를 들어 대출금이 1억 5천만 원이라면 금리 1%포인트는 연 150만 원, 월 12만 5천 원 정도입니다. 2억 원이면 월 약 16만 7천 원입니다. 이건 한 달 장보기 예산의 일부일 수도 있고, 아이 학원비 하나일 수도 있고, 부부 외식 두세 번일 수도 있습니다.
- 1억 원 대출에서 금리 1%포인트 상승: 월 약 8만 3천 원 증가
- 1억 5천만 원 대출에서 금리 1%포인트 상승: 월 약 12만 5천 원 증가
- 2억 원 대출에서 금리 1%포인트 상승: 월 약 16만 7천 원 증가
이렇게 보면 “금리 조금 오를 수도 있지”가 아니라 “매달 식비에서 10만 원 넘게 빠질 수 있구나”로 느껴집니다. 전세대출은 계약 기간이 길기 때문에 처음 한두 달보다 1년 뒤, 2년 뒤의 예산까지 같이 봐야 합니다.
5. 이사 첫 3개월 지출은 따로 잡아둔다
전세대출을 실행하고 이사까지 끝나면 이제 안정될 것 같지만, 가계부는 보통 그때부터 흔들립니다. 커튼, 수납장, 전등, 도어락 배터리, 청소용품, 주방용품처럼 애매하게 필요한 물건들이 계속 생깁니다. 하나씩은 1만~5만 원인데 모으면 큽니다.
제 가계부 기준으로 이사 첫 달 추가 지출은 평소보다 80만~150만 원까지 늘어난 적이 많았습니다. 물론 새 가전을 사면 더 커집니다. 그래서 전세대출 계산표에는 이사비와 중개보수뿐 아니라 “입주 후 3개월 적응비”를 넣어두는 게 현실적입니다.
입주 후 3개월 예비비 항목
- 생활용품과 수납: 30만~70만 원
- 청소, 소모품, 소형가전: 20만~60만 원
- 관리비 정산과 공과금 변동분: 10만~30만 원
- 예상 못 한 수리 또는 교체: 20만 원 이상
이 돈을 미리 빼두면 이사 후 카드 사용이 덜 늘어납니다. 전세대출 자체보다 이사 직후의 들뜬 소비가 더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새집에 맞춰 다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첫 3개월은 필요한 것과 갖고 싶은 것을 나눠 사는 쪽이 잔고에 훨씬 편합니다.
전세대출을 결정하기 전 볼 숫자
전세대출은 잘 쓰면 월세 부담을 줄이고 주거 안정성을 높이는 도구가 됩니다. 다만 한도가 나온다고 해서 그 금액이 내 생활에 맞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계부에는 대출 심사표에 없는 지출이 너무 많습니다.
저라면 전세대출을 정하기 전에 세 가지 숫자를 봅니다. 첫째, 대출 후 월 고정비가 실수령액의 몇 퍼센트인지. 둘째, 비상금이 최소 2~3개월치 남는지. 셋째, 금리가 1%포인트 올라도 저축을 완전히 멈추지 않을 수 있는지입니다.
집은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무조건 싼 집만 고르자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좋은 집에 들어간 뒤 매달 잔고를 보며 불안해지는 선택이라면, 그 집은 생각보다 비쌀 수 있습니다. 전세대출은 집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2년 동안의 생활 리듬을 고르는 일에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