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보험 가입 전 가계부에서 먼저 확인할 5가지 숫자

1. 사망보험금은 마음이 아니라 생활비로 계산한다
얼마 전 10년 전 가계부를 다시 넘겨보다가, 보험료 칸에 유난히 진한 펜 자국이 남아 있는 걸 봤습니다. 그때는 불안해서 이것저것 넣었는데, 막상 숫자로 보니 우리 집에 필요한 보장은 꽤 단순했습니다. 정기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은 딱딱하지만 결국 남은 가족이 몇 년 동안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한 달 생활비가 300만 원인 집이라면 1년 생활비는 3,600만 원입니다. 남은 가족이 5년 정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면 생활비만 1억 8,000만 원이 됩니다. 여기에 자녀 교육비, 남은 대출, 장례비 같은 항목을 더하고 이미 가진 예금이나 배우자의 소득을 빼면 대략적인 필요 보장액이 나옵니다.
저는 이 계산을 할 때 ‘넉넉하면 좋지’보다 ‘실제로 매달 낼 수 있나’를 먼저 봅니다. 보장액을 크게 잡고 보험료가 부담되면 2년 뒤 해지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가계부 입장에서는 완벽한 설계보다 오래 유지되는 설계가 더 현실적입니다.
2. 보험료는 월소득의 3~5% 안에서 본다
정기보험은 종신보험보다 같은 보장액 기준 보험료가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가장의 사망 보장을 준비할 때 자주 비교 대상이 됩니다. 다만 싸다고 느껴지는 상품도 여러 개가 겹치면 고정비가 됩니다. 고정비는 한 번 늘어나면 줄이기 어렵습니다.
제가 가계부에서 자주 쓰는 기준은 보험료 전체를 월소득의 3~5% 안에서 보는 것입니다. 월 실수령 400만 원인 가정이라면 전체 보험료가 12만~20만 원 정도입니다. 여기에는 실손, 자동차보험 월 환산액, 자녀보험, 정기보험이 모두 들어갑니다. 정기보험 하나만 보고 ‘월 3만 원이면 괜찮네’라고 판단하면 나중에 총액이 커질 수 있습니다.
- 실손보험: 병원비 리스크 대비
- 자동차보험: 차량 보유 시 필수 지출
- 정기보험: 소득 공백 대비
- 자녀보험: 보장 범위와 중복 여부 확인
사실 보험은 하나씩 보면 다 그럴듯합니다. 근데 가계부는 합계를 보여줍니다. 월 4만 원짜리 5개는 월 20만 원이고, 1년이면 240만 원입니다. 이 숫자를 보고도 부담이 없다면 유지 가능성이 높고, 보는 순간 답답하다면 조정이 필요합니다.
3. 보장기간은 ‘언제까지 가족이 내 소득에 의존하나’로 잡는다
정기보험의 장점은 기간을 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0년, 20년, 60세 만기, 65세 만기처럼 선택지가 있는데, 이때 나이만 보고 고르면 애매해집니다. 기준은 가족의 경제적 의존 기간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5세이고 대학 졸업 전까지를 생각한다면 최소 20년 안팎의 보장기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이 25년 남았다면 대출 상환 기간도 같이 봐야 합니다. 반대로 자녀가 이미 독립했고 대출도 거의 없다면 긴 기간의 큰 사망 보장이 꼭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보장기간을 잡을 때 세 가지 숫자를 적습니다. 첫째, 막내 자녀가 독립할 예상 나이. 둘째, 대출이 끝나는 시점. 셋째, 배우자나 본인의 국민연금·퇴직연금이 어느 정도 들어오는 시점입니다. 이 세 숫자가 겹치는 구간이 정기보험이 가장 필요한 기간입니다.
4. 갱신형과 비갱신형은 현재 보험료만 보면 헷갈린다
정기보험을 비교하다 보면 갱신형이 처음에는 저렴하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갱신 시점에 보험료가 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젊고 현금흐름이 빠듯한 시기에는 갱신형이 유리해 보일 수 있지만, 10년 뒤 생활비와 교육비가 같이 커지는 집이라면 그때의 인상분이 꽤 부담될 수 있습니다.
비갱신형은 처음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대신 정해진 기간 동안 보험료 예측이 쉽습니다. 가계부를 오래 써보면 예측 가능한 지출이 얼마나 편한지 알게 됩니다. 매년 오르는 항목이 많을수록 고정된 금액 하나가 주는 안정감이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무조건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비교할 때는 첫 달 보험료가 아니라 총 납입액을 같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월 2만 원으로 시작하는 갱신형과 월 4만 원 비갱신형이 있다면, 20년 동안 각각 얼마를 내게 될지 시나리오를 적어봐야 합니다. 실제 금액은 상품과 나이, 건강상태에 따라 달라지니 가입 전에는 약관과 설계서를 꼭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5. 가입 전 가계부에서 지워볼 항목도 있다
정기보험을 새로 넣기 전에 저는 먼저 최근 3개월 지출을 봅니다. 배달비, 구독료, 편의점 지출, 충동구매 항목을 따로 표시합니다. 여기서 월 3만~5만 원이 줄어들면 정기보험료가 새 부담이 아니라 지출 구조 조정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주 배달 2회를 1회로 줄여 월 4만 원이 남는다면, 그 돈으로 보장을 준비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보험료를 낼 때마다 ‘또 돈 나갔다’는 느낌이 덜합니다. 이미 새고 있던 돈의 방향을 바꾼 셈이니까요.
반대로 줄일 항목이 전혀 없고 매달 카드값을 막기 바쁘다면 보험 가입보다 비상금 100만 원부터 만드는 게 먼저일 수 있습니다. 사망 보장도 중요하지만, 당장 다음 달 생활비가 흔들리면 보험 유지가 어렵습니다. 보험은 해지하면 손해가 생길 수 있으니 시작 전에 숨 쉴 공간을 만들어두는 게 좋습니다.
우리 집 숫자에 맞는 정기보험이 오래 간다
정기보험은 불안을 크게 만드는 상품이 아니라, 불안을 숫자로 작게 나누는 도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보장액, 낼 수 있는 보험료, 필요한 기간을 적어보면 막연했던 걱정이 꽤 구체적으로 변합니다.
저라면 처음부터 큰 보장을 욕심내기보다 월 지출표 안에서 오래 유지 가능한 금액을 먼저 찾겠습니다. 가족을 위한 선택이 매달 나를 압박하는 고정비가 되면 오래 가기 어렵습니다. 가계부를 오래 써보니 좋은 선택은 대단한 각오보다 다음 달에도 무리 없이 반복되는 숫자에 더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