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험 가입 전 꼭 보는 5가지 숫자

얼마 전 가계부 상담을 하다가 전세보증금 2억 4천만 원짜리 집을 계약하려는 분이 보증료 50만 원이 너무 아깝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 마음을 압니다. 월급 들어오면 관리비, 식비, 보험료가 줄줄이 빠지는데 전세보험까지 더하면 통장 잔고가 더 얇아 보이거든요.
그런데 전세보험은 아끼면 기분 좋은 구독료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전세보증금은 보통 한 가정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2억 원짜리 보증금에서 50만 원을 아끼는 판단은 숫자로 보면 0.25%를 아끼려고 2억 원 회수 리스크를 그대로 안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1. 보증료는 월 비용으로 쪼개서 본다
전세보험료가 한 번에 빠져나가면 크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가계부에서는 계약 기간으로 나눠 봐야 판단이 편합니다. 예를 들어 보증금 2억 원, 연 보증료율 0.15%, 계약 기간 2년이면 대략 60만 원입니다. 24개월로 나누면 월 2만 5천 원 정도예요.
월 2만 5천 원이면 외식 한 번, 배달 두 번, 커피 몇 잔 가격입니다. 물론 작은 돈은 아닙니다. 다만 이 돈이 단순 소비인지, 보증금 회수를 위한 비용인지 구분하면 마음이 조금 달라집니다. 저는 가계부에 이 비용을 주거비가 아니라 주거 안전비로 따로 적습니다.
2. 가입 가능 보증금부터 먼저 확인한다
전세보험은 돈만 내면 누구나 가입되는 상품이 아닙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 상품은 전세보증금 기준이 수도권 7억 원 이하, 그 외 지역 5억 원 이하로 안내됩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전세지킴보증은 전세자금보증 이용 여부와 연결되는 경우가 있어 대출 은행과 같이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서울보증보험 상품은 구조가 또 다르니 보증기관을 먼저 정해 두면 헷갈림이 줄어듭니다.
- 수도권 고가 전세라면 보증금 한도부터 확인
- 전세대출을 같이 받는다면 은행에서 취급 가능한 보증기관 확인
- 주거용 오피스텔은 계약서나 확인서에 주거용 표시가 있는지 확인
- 근린생활시설, 위반건축물, 권리침해가 있는 집은 초반부터 조심
계약 직전에 이 사실을 알면 선택지가 확 줄어듭니다. 마음에 드는 집을 보고 나서 보증보험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은 이상하게도 위험을 합리화합니다. 그래서 저는 집을 볼 때 보증보험 가능 여부를 월세, 관리비, 역세권만큼 앞에 둡니다.
3. 보증한도는 집값에서 빚을 빼는 계산이다
전세보험에서 많이 막히는 지점은 보증한도입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 기준으로는 주택가격의 90%에서 선순위채권 등을 뺀 금액이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쉽게 말해 집값 대비 이미 잡혀 있는 빚이 많으면 내 보증금을 전부 보장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택가격을 3억 원으로 보고 90%를 적용하면 2억 7천만 원이 됩니다. 그런데 선순위 근저당이 8천만 원이면 남는 한도는 1억 9천만 원입니다. 내가 전세보증금 2억 2천만 원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숫자상 여유가 부족합니다. 이런 집은 월세가 조금 저렴해 보여도 가계 전체로 보면 싼 집이 아닐 수 있습니다.
계약 전 등기부에서 볼 숫자
- 을구에 적힌 근저당권 금액
- 갑구의 압류, 가압류, 경매개시, 가등기 여부
- 다가구주택이라면 다른 세입자의 보증금 규모
- 건축물대장상 위반건축물 표시 여부
특히 다가구주택은 내 방만 보면 계산이 끝나지 않습니다. 같은 집 안에 먼저 들어온 세입자의 보증금이 선순위로 잡힐 수 있습니다. 보증금이 저렴해 보여도 전체 건물의 빚과 보증금이 많으면 리스크가 커집니다.
4. 신청기한은 계약기간 절반 전에 끝낸다
전세보험은 나중에 불안해졌을 때 느긋하게 가입하는 상품이 아닙니다. 신규 전세계약은 잔금일과 전입신고일 중 늦은 날을 기준으로 계약기간의 절반이 지나기 전에 신청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년 계약이면 대략 1년이 지나기 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갱신 계약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갱신 전후로 조건이 달라지고, 보증기관이 요구하는 서류도 추가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사 가계부를 만들 때 잔금일, 전입신고일, 확정일자 받은 날, 보증보험 신청 마감일을 한 줄에 적어 둡니다. 날짜 하나 놓쳐서 가입 기회를 잃는 건 너무 아깝습니다.
- 확정일자 받은 임대차계약서
- 전입세대열람내역
- 보증금 이체내역이나 영수증
- 주민등록등본
-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
서류는 대부분 평범해 보이지만, 막상 준비하면 하루 이틀은 금방 갑니다. 계약서 특약에 전세보증금반환채권 양도나 담보 제공을 막는 문구가 있는지도 봐야 합니다. 문장 하나 때문에 심사에서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5. 전세보험은 절약의 반대가 아니다
생활비를 아끼는 사람일수록 보험료를 싫어합니다. 저도 가계부를 오래 쓰면서 필요 없는 보험, 겹치는 보장, 이름만 번듯한 상품을 많이 줄였습니다. 하지만 전세보험은 줄일 비용인지 지킬 비용인지 따로 봐야 합니다.
월 2만 원을 아끼려고 보증금 2억 원의 불안을 안고 사는 것보다, 월 2만 원짜리 고정비를 인정하고 나머지 생활비를 조절하는 쪽이 현실적일 때가 많습니다. 배달비를 월 3회만 줄여도 비슷한 금액이 나옵니다. 죄책감으로 아끼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큰돈을 지키는 비용과 기분으로 쓰는 비용을 분리하자는 뜻입니다.
저라면 전세 계약을 앞둔 가계부에 보증보험료를 처음부터 넣겠습니다. 가입이 된다면 비용을 계산하고, 가입이 안 된다면 그 집은 다시 볼 겁니다. 전세보험은 완벽한 방패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보증금이 위험한 집인지 숫자로 한 번 걸러 주는 장치입니다. 집을 고를 때 이 정도 안전장치는 생활비 아끼는 습관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봅니다.
